안녕하십니까

한인회장 조상현입니다.

오늘 이 지면을 빌어 제 7대 한인회 출범과, 한인회보 부활 발간에 즈음한 인사 올립니다.

이곳에서 십 수년을 살아온 저는 도통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데

몇 년 만에 출장 오시는 분들은 인도가 참 많이 변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는지요?

몇 가지 회상과, 고백과 반성으로 인사말을 대신 할까 합니다.

지금은 익숙한 것들이지만, 처음 접하는 많은 것들이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 데나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에서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소와 개와 까마귀가 어우러져 먹이다툼을 하고,

거기 젓국처럼 큰길로 스며 나오는 정체 모를 액체의 역한 냄새가 오래된 먼지에 실려, 내 고귀한 금강제화 위에 날마다 서리처럼 내려앉고,

그 위로 리자드의 발자국과 똥이, 무지막지한 더위와 습기에 화석이 돼가는 것을 보고, 쉽지 않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인도생활,

역시나, 나만의 기준으로 마주하는 현실마다 기가 막히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 모든 것을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으로 대하다 보니

서른네다섯 푸르디 푸른 청춘 언저리엔 켜켜이 분이 쌓이고 피멍이 들고, 사는 것에 회의까지 느끼며, 초 중기 인도생활을 했습니다..

기가 막히는 거짓말과 성대한 궤변을 조목조목 따지거나 반박하고, 손해의 배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언어의 장벽으로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체 했지만, 말술과 줄담배가 아니면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내면은 고립무원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속수무책 타 들어가던 내 속,  

폐는 열이 가득하고, 눈은 노랗고, 간은 하얗게 변해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공포에 질린 아이처럼 밤낮으로 악몽을 꾸며 살았습니다.

화와 더위에 지친 밤마다, 사리 걸치고 룽기 두른 귀신들이 누런 뻐드렁니를 들어내고 킬킬거리며, 하수 파이프를 타고 기어 올라왔고,

창문도 부레이크도 없는 늙고 기괴한 버스를 몰고, 듬성듬성 파이고 헤진 아스팔트 바닥에 자욱한 먼지와 검은 기침을 쏟아내며 내달리는데,

거기 낮잠 자던 패트병과, 헤진 슬리퍼나, 찢어진 운동화들이 놀라 일어나 내게 쌍욕을 해대며 뺨을 후려갈기고 ,

또 어느 꿈속에선, 형형색색의 우산을 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이유도 모른 체 하루 종일 뒤쫓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 폐가에 쓰러져 있고,

비 오는 밤이면 아스팔트 바닥에 말라붙은 개의 가죽들이 불어터지고, 뼈가 붙고 살이 돋아 실같은 침을 흘리며, 핏발선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어린 것들도 알게 모르게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아니면 저희 나름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날이면 날마다 한국 가자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남자의 인생’ 쉽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던히도 인도와 인도인을 미워했고, 적개심으로 인해 순박함도 온화함도 상실한 체, 인상도 언행도 날로 피폐해 지는 것을

애써 모른 체 하며, 오히려 그 것을 무기 삼아 이 악물고 단지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왠지 전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습니다.

인도!
누군가에겐 낙원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반 지옥이며, 오지입니다.

여행자나 글쟁이들이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인도와, 현지에서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짓고, 제품을 양산하고 회사를 운영하며, 그야말로 목을 담보로 사는 사람들이 보는 인도는 전혀 다릅니다.

본사에서 보는 인도와 현지 법인에서 보는 인도가 다를 것이며, 법인장님이 보는 인도와 현장에서 말단이 보는 인도가 다를 것이며, 아내가 보는 인도와 남편이 보는 인도가 또 다를 것입니다.

인도를 극찬하는 분들을 보는 눈도 긍정과 부정으로 교차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인!!!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40도를 웃도는 더위의 강도가 다를 것이며, 사람을 보는 눈도 각자 서있는 자리에 따라 여유로움과 게으름, 사악함과 선량함으로 나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순수와 친절과 순박함에 간이라도 떼주고 싶을 것이며

어떤 이는 궤변과 거짓말과 사기에 치를 떨고 마음을 닫아버릴 것입니다.

맘먹기에 따라서, 혹은 내 행위나 처지에 따라서, 천치와 철면피를 만나기도 하고, 현자나 성자를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 역시 표준과 정도는 없습니다.

이런 양면성의 현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만만치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가 감히 자랑하고 우쭐할 형편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국은 지금,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반면, 인간성 말살이 염려의 수준을 넘어, 온갖 사기와 폭력이 난무하고 반목과 불신이 횡행하며,

탈선과 이혼으로 인한 가정붕괴에, 하루 평균 서너 건의 살인까지 살벌하기 짝이 없으니, 한국이 좋고 인도가 나쁘다고 감히 말 할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말도 안 되는 무시와 착취와, 체불과 추행 등으로 수준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으며,

적개심 가득한 그들의 조국과 가족들은 우리 한국인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부적절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행위로 우리 모두를 도매금으로 넘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치러야 할 대가는 고스란히 나쁜 한국사람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조국을 떠나 있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되돌아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았으나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이유는

피상적인 면만 보면서 패기 하나로 살았을 뿐, 이해하고 숙이고 감추지 못해 소탐대실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없이 부끄럽고,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럼에도 큰 사고 없이 살았으니 제가 믿는 신의 가호가 있지 않았나 늘 생각합니다..

이런 장광설 끝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도의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조직의 명이었든 개인의 판단이었든 최선의 선택으로 인도 땅을 밟았으며,

미우나 고우나 이 땅에서 비비고 사는 이유는 우리가 이 땅과 이 고장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불편 부당한 일이 없진 않지만,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렇습니다.

한인회가 13억 인도를 바꿀 수도, 4천여 첸나이 한인들의 마음을 한데로 모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인회와 여러분이 다 함께 이 고장에서 옷차림 하나라도 신경 쓰는 마음과 모습으로. 인내하며,

우리 스스로의 역할을 찾는 것만이 누군가의 과오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는 곱지 않은 정서와 오해를 풀 수 있다는 말씀을 주제 넘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주재원 여러분, 자영업자 여러분!!!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인도 생활, 소중한 체험과 추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들 또한, 영원히 잊을 수도, 잊힐 수도 없는 값진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한인회가 함께하겠습니다.
 

제7대 한인회

거창한 공약도 계획도 없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나 여러분께 위안이 되는 일이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한인과 한인회 존재감 회복하고, 인도 지역사회와 또 한인사회와 소통하고 사랑하겠습니다.

각자의 생업에 최선을 다하며, 형편과 능력 안에서 내실 있게 봉사하고 나누는 것을 여러분의 뜻으로 받들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어떻게든 좋은 모습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인 어느날,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에게

인도에서, 첸나이에서 한국인으로 살았고 그때 거기에 제 7대 한인회가 있었다는 기억 꼭 만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재인도 첸나이 한인회장 조상현 사룀(.)

iCkoa|인도 첸나이 한인회

 

Bangalore Highway, Sriperumbudur 602105 tamilnadu, India

 

e-mail : admin@icko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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